호텔경제론이 무엇인가?
최근 '25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호텔경제론'이 논란입니다.
대선후보 토론에서도 이준석 후보와 논쟁을 펼쳤습니다.
호텔경제론은 이재명 후보가
돈의 순환과 경제 활성화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일종의 비유인데 지금은 논란의 밈이 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 개념은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니고
지난 2017년 대선 경선 당시
기본소득과 지역화폐 사용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꺼낸 개념입니다.
그런데 지난 16일 군산 유세에서 이 후보가
다시 이 내용을 언급하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 여행객이 호텔에 10만 원의 예약금을 내면
호텔 주인은 이 돈으로 가구점 외상값을 갚고,
가구점 주인은 치킨집에서 치킨을 사 먹는다.
치킨집 주인은 문방구에서 물품을 구입하고, 문방구 주인은 호텔에 빚을 갚는다.
이후 여행객이 예약을 취소해도 돈이 한 바퀴 돌면서 경제가 살아난다”
그러면서 "돈이 도는 걸 경제라고 한다.
돈이 팽팽팽 돌면 돈의 양이 적어도 경제가 활성화된다"라며
경제 순환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 비유는 지역화폐와 같은 정책이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한 사례로 제시되었습니다.

이재명 후보의 '호텔경제론'은
기본적으로 케인스의 '승수효과' 개념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제시한 개념으로,
정부의 지출이 경제 활성화를 유도해 국민소득 증가로 이어지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이재명 후보의 경제 브레인으로 알려진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호텔경제론'은 돈이 잘 돌게 해서, 새로 '돈풀기'를 하지 않고도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어떤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것이 케인스가 1936년 대공황 극복을 위해 제시한
단순화된 재정 효과 예시들처럼
경제원리를 쉽게 설명하기 위한 예시일 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하 교수는 또한 "경제가 깊은 불황일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가 땅에 구멍들을 파는 정책을 편다.
혹은 병 안에 돈을 집어넣은 뒤 폐광에 묻고 쓰레기로 덮은 후
민간기업들이 이 돈을 다시 꺼내도록 하는 정책을 쓴다"면서
"극단적인 예를 통해 케인스는
이런 비현실적이고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정책이라도,
확장적 재정정책이 총수요 부족에 따른 경제침체의 경우에는
경기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웅변적으로 표현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지역화폐와의 연관성
호텔경제론은 이재명 후보가 주장해온 지역화폐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일부 진보경제학자들은 이 모델이 어빙 피셔 예일대 교수가 1933년 소개한 '스탬프 스크립(지역화폐)'과 유사하다고 주장합니다. 스탬프 스크립은 지역 내에서 물품을 구매할 수 있는 증서로,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낮아지는 식이라 빠른 소비를 유도합니다.
이재명 후보는 호텔경제론을 통해 지역화폐 등 정부 재정으로 국민 소비가 활성화되면 상권에 활력이 발생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경제 정책이 실제로 경제 활성화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그리고 재정정책의 방향성에 관한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입니다.
호텔경제론에 대한 비판
그러나 이 '호텔경제론'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제학계에서는 이 모델이 실제 정책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크고, 다양한 부작용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주요 비판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비현실적인 한계소비성향
호텔 경제론 모델은 참여자 모두가 10만원을 벌면 10만원을 쓰는 한계소비성향이 1인 경우를 가정하고 있습니다. 한계소비성향은 새로운 수입 중 소비하는 비율을 뜻하는데, 경제학자들은 현실적으로 한계소비성향이 1인 경우는 없다고 지적합니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수입이 생기면 일부는 저축하고, 일부는 빚을 갚고, 나머지 일부를 소비에 쓰기 때문입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진보 성향 경제학자는 "현실에서 한계소비성향이 1인 경우는 없다. 한계소비성향이 아니더라도 10만 원을 지역화폐나 상품권으로 지급하더라도 이는 원래 쓰려던 돈을 대체하는, 실제로는 추가 소비가 발생하지 않아 효과가 없는 등 현실의 여러 측면을 간과한 일종의 우화 같은 모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2. 생산이 없는 경제 모델
케인즈의 '승수' 모델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생산'이 빠졌다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A가 B에게 돈을 주고, B가 다시 C에게 돈을 준다고 해서 경제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생산이 이뤄져야 비로소 성장이 가능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케인즈의 승수효과란, 정부가 도로나 항만 건설에 100만 원을 투입하면 기업이 사람을 고용하고, 임금을 받은 사람들이 소비를 늘리며, 그에 따라 기업이 새로운 물건을 생산하는 방식이 성장의 구조다. 반면 호텔에서 노쇼가 발생했는데도 돈이 돌았다는 해당 모델은 애초에 케인스식 논리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3. 부작용과 피해자 고려 부족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구조지만, 실제로는 '노쇼'로 인한 피해자와 그에 따른 부작용이 감춰져 있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설령 해당 모델이 유효하다고 하더라도, 노쇼를 당한 호텔 사장은 원래 받아야 했던 손님을 놓쳤을 수 있고,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이미 인력과 자원을 투입한 상황(기회비용 발생)이기 때문에 마이너스를 본 피해자"라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현실에서는 '호텔 마을'에 속한 일부 주체들만 혜택을 보고, 마을 바깥의 이들은 오히려 부작용을 떠안을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초기 지출을 정부의 재정 투입으로 해석하면, 결국 그 재원을 바깥 사람들이 세금으로 부담하게 된다"며 "혜택을 받는 주체와 부담을 지는 주체가 다를 뿐 아니라, 한국처럼 재정을 빚, 즉 국채를 통해 조달하는 구조에서는 현재 효과가 불확실한 정책으로 미래 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든다"고 말했습니다.
결론: 비유의 한계와 경제 정책의 현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극적인 표현을 위해 예약 취소를 강조한 건 자승자박으로 보인다"면서도 "예약 취소 부분만 없다면 승수효과를 설명하는 전형적 방식이다. 이 비유가 이렇게 이슈가 되는 것 자체가 놀랍다"고 말했습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재명 후보 비유는 처음 들어온 돈이 빠져나가도 효과가 있다는 걸 강조하려는 우화로 보인다"며 "다만 우화가 아니라 이론 차원에서 접근하면 돈이 빠져나갈 경우 경제 생태계 균형이 만들어지지 않아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경제순환을 강조한 우화는 우화 차원에서 교훈을 얻으면 되는데 다들 지나치게 정색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결국 '호텔경제론' 논란의 기저에는 이재명 후보의 지역화폐 정책이 소비 진작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적극적 재정정책이 어느 정도로 필요한지 등에 대한 시각 차이가 깔려 있습니다. 경제 이론을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한 비유가 선거 국면에서 정치적 공방의 소재가 된 것이죠.
이재명 후보의 호텔경제론은 경제 활성화를 위한 돈의 순환 중요성을 강조하는 비유이지만, 실제 정책으로 구현될 때는 보다 복잡한 경제적 현실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의 선거 과정에서 각 후보의 경제 정책을 평가할 때는 단순한 비유나 구호를 넘어, 그 정책이 가져올 실질적인 효과와 부작용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